아버지의 명성에 힘입어 정치인이 된 후 승승장구하던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아들 때문에 정치인생에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.
남경필 지사가 대권 후보로 거명될 정도로 정치적 거물이 된 데에는 선친인 고(故)남평우(1937~1998)전 신한국당 의원의 영향이 컸다. 남 지사의 아버지는 버스 기업인 경남여객과 경인일보를 소유했던 기업인 출신 정치인입니다.
고인은 제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수원시 권선구 을 선거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됐으며,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도 수원시 팔달구에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연이어 당선됐다. 남평우 전 의원은 그러나 제15대 국회 임기 중이던 1998년 3월 13일, 심장 질환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.
같은 해 7월 21일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시 미국 폴리테크닉대학교 도시공학 박사과정에 있던 아들 남경필이 급히 귀국해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 되면서 아버지의 지역구를 계승했다. 당시 남경필의 나이는 33세로, 15대 국회의원 중 최연소였습니다.
남평우 전 의원은 경기지역의 기업가이자 정치인으로 지역구에서 명성은 물론, 재정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었을 터. 아들 남경필의 국회의원 당선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8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이 돌았다. 남 지사 스스로도 “난 금수저 출신이 맞다”고 인정한 바 있습니다. 남경필 지사는 이 후 16, 17, 18, 19대 까지 수원 팔달에서 내리 5선을 했고, 2014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가 됐다. 아버지를 능가하는 정치적 거물이 된 것입니다.
광고때문에 글을 읽을 수가 없네요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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